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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몽환화' 미리보기 2회 | 읽을거리 2014-05-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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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


매년 칠석 무렵, 온 식구가 모두 장어를 먹으러 가는 것이 가모 일가의 연례행사였다. 그 자체에는 소타도 불만이 없었다. 사실 장어를 무척 좋아한다. 제발 좀 봐줬으면 하는 것은 그전에 거쳐야 하는 행사다.
이 시기, 다이토 구 이리야에서는 나팔꽃 시장이 열린다. 모두가 그곳을 두 시간 정도 둘러보고서야 겨우 시타야에 있는 유서 깊은 장어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모두라는 것은 부모님과 형, 그리고 소타 본인까지 더한 네 명이다. 부모님은 유카타목욕을 한 뒤, 또는 여름철에 입는 무명 홑옷를 입는 경우도 있다. 그런 차림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리야 역까지 온 후 나팔꽃 도매업자나 수레에 진열된 행상들 사이를 걷는 것이다.
어릴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소타는 점점 이 행사에 함께하는 게 귀찮아졌다. 이미 열네 살이다. 축제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와 함께 움직이는 게 우울했다. 장어만 아니라면 절대 동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당초 소타는 왜 이런 일이 가모 일가의 연례행사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 관해 아버지인 신지에게 물어보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팔꽃 시장은 여름의 볼거리야. 그러니까 일본의 문화지. 그걸 즐기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
하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럼 안 오면 되잖아, 대신 장어도 없다”라며 아버지는 차갑게 내뱉었다.
형인 요스케가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것도 소타는 불가사의했다. 요스케는 소타보다 열세 살이나 많아 스물일곱 살이다. 가방끈도 길고 공무원이라는 든든한 직업도 있다. 게다가 외모도 나쁘지 않아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사귄 여자가 몇 명 되는 듯했다. 그런데도 이 행사에 매년 착실히 참여하고 있다. 보통 칠석날 밤에는 가족보다 연인과 같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의문을 본인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소타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을 어려워했다. 이 경우에도 별것 아닌 질문을 한다고 바보 취급이나 당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나팔꽃 시장에 오면 요스케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나팔꽃을 보곤 했다. 그 표정은 즐겁다기보다 뭔가를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과학자 같은 눈이었다.
“좋잖아, 일 년에 한 번쯤 가족끼리 산책하는 것도.” 어머니인 시마코는 소타의 불만을 이런 식으로 흘려들었다. “나팔꽃을 파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니? 나는 좋던데.”
소타는 한숨을 쉬고 반론을 포기했다. 가모 일가의 나팔꽃 시장 순례는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부터 있었던 전통으로 그에 관해 어머니는 한 번도 의문을 갖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탓에 올해도 모두 이리야로 향하게 되었다. 통행이 금지된 한쪽 삼 차선의 행상 거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유카타 차림의 여성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경찰 차량이 나와 경찰관이 경비를 서고 있다.
나팔꽃 시장에는 백이십 개 이상의 업자가 가게를 냈다. 아버지와 형은 그 가게를 한 집씩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게 주인과 짧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다만 화분을 산 적은 없다. 그저 꽃을 보는 게 전부다.
어쩔 수 없이 소타도 늘어선 화분에 시선을 던졌다. 대다수가 대륜大輪 나팔꽃이지만 가장 핵심인 꽃은 시들어 있다. 나팔꽃이 피는 것은 아침때뿐이라고 한다. 시든 꽃을 바라보며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늘 의문이었다.
그런데 화분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 가게 사람들이 “앞으로 점점 더 피니까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화분에는 ‘이리야 나팔꽃 시장’이라고 적힌 팻말이 달려 있다. 그 팻말을 원하는 사람도 꽤 많은 듯하다.
소타는 걷다가 오른쪽 발에 통증을 느꼈다. 새끼발가락 바로 옆이다. 새 운동화인 데다 멋을 내느라 양말을 신지 않은 탓이다. 그런 말을 하면 혼날 것 같아 잠자코 있기로 했다.
기시모진(해산과 육아, 양육을 수호하는 여신) 당 입구 부근은 매우 혼잡했다. 고개를 드니 제등이 늘어서 있다.
오른발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운동화를 벗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새끼발가락 옆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발이 아프다고 시마코에게 호소했다. 어머니는 자식의 발을 보고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앞서 걷고 있던 아버지와 형에게 얘기하러 갔다. 아버지는 마뜩치 않은 얼굴로 뭐라고 대꾸했다.
이윽고 어머니가 돌아왔다.
“어쩔 수 없으니까 쉬라고 하시네. 장어 집에 가는 길은 알고 있지? 그 길로 꺾이는 모퉁이에 가 있어.”
“알았어.”
살았다. 아픈 발로 걷지 않아도 되는 데다 나팔꽃을 보는 일도 면했다.
행상 거리에는 중앙분리대가 있다. 걷다 지친 사람들이 그곳을 의자 삼아 앉아 있다. 소타도 적당한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얼마 후 바로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유카타와 게타왜나막신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성이나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게타의 끈이 분홍색이었다.
“아프겠다.”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소타는 흠칫 옆을 봤다. 유카타 차림의 여자애가 그의 발을 보고 있었다.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눈이 살짝 치켜올라가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콧날은 오뚝하다. 소타와 비슷한 또래일까.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다. 소타도 고개를 돌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몸이 뜨거웠다. 특히 귀가 뜨겁다.
다시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었다. 볼까. 그러나 또 쳐다보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누군가 휙 앞을 지나갔고 동시에 뭔가가 땅에 떨어졌다.
옆에 있는 여자애에게 정신이 팔렸던 탓에 반응이 조금 늦었다. 눈앞에 떨어진 것이 지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몇 초가 걸렸다. 주워들고 앞을 봤을 때에는 누가 떨어뜨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저 아저씨 같아.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
옆의 여자애가 가리켰다. 본 모양이다.
“어? 어떤 사람?”
소타가 운동화를 고쳐 신었다.
“저기, 지금 판매대 앞을 지나쳤어.”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소타는 지갑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 새끼발가락에 극심한 통증이 내달렸다. 얼굴을 찡그리고 발을 끌었다.
뒤에서 유카타의 소녀가 쫓아왔다.
“어떤 사람인지 알아?”
“몰라.”
“그럼 안 되잖아.”
소녀는 심각한 얼굴로 멀리 시선을 던졌다. 몇 번인가 두리번거린 후에 눈을 크게 떴다.
“저기야! 빨간 포렴이 걸린 판매대 앞. 하얀 셔츠에 목에 수건 두른 사람.”
소타는 소녀가 가리킨 쪽을 봤다. 빨간 포렴을 내건 판매대가 분명 있었다. 그 앞에 여자애가 말한 인물이 있었다. 쉰 살 전후로 보이는 마른 남자다.
통증을 참고 잰걸음으로 향했다. 그 남자는 같이 온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얼마 후 놀라는 얼굴로 돌아보고는 다른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을 떨어뜨렸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소타는 유카타의 소녀와 함께 남자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어, 왜?”
남자는 긴장한 얼굴로 돌아봤다. 눈이 빨갰다.
“이거, 떨어뜨리지 않으셨어요?”
소타가 지갑을 내밀자 남자의 눈과 입이 동시에 크게 벌어졌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맞아. 그런데 어디서?”
“바로 저기요.”
남자는 지갑을 들고 다른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아, 다행이다. 큰일 날 뻔했네. 전혀 몰랐어.”
같이 온 여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심해. 이렇게 덜렁대서야.”
“정말이야. 아, 정말 다행이다. 고마워. 귀여운 커플에게 도움을 받았네.”
남자의 말에 소타는 깜짝 놀랐다. 바로 옆에 유카타의 소녀가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남자가 지갑에서 천 엔짜리 지폐를 꺼냈다. “둘이서 차라도 마시렴.”
“아니, 괜찮습니다.”
“사양 말고. 이미 꺼낸 거니까 도로 넣을 수도 없어.”
남자는 억지로 천 엔을 소타에게 쥐여주고 여자와 함께 사라졌다.
소타는 유카타의 소녀를 봤다.
“어떻게 하지?”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나누자.”
“난 괜찮아.”
“왜?”
“그야, 네가 주웠잖아.”
“하지만 나 혼자였으면 그 아저씨를 못 찾았을 거야. ……맞다!” 소타는 바로 옆에 있는 판매대를 봤다. “일단 여기서 뭔가 사지 않을래? 주스 같은 거.”
그녀의 표정이 싫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할까.”
“소프트? 그런 걸 파는 데가 있으려나?”
“저기 편의점이 있어.”
“아, 그렇지!”
축제라고 해도 판매점에서 꼭 사야 한다는 법은 없다. 편의점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고 거스름돈을 나눴다. 수많은 차가 오가는 도로에 면한 인도 한쪽에 서서 나란히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혼자 왔어?” 소녀가 물었다.
“그럴 리가, 가족이랑 함께 왔어. 좀 있다 만나서 같이 밥 먹을 거야. 매년 하는 행사인데 좀 귀찮아.”
“어머!” 소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 집이랑 똑같다.”
“그렇다면 너희 집도?”
“음, 이유는 모르지만 옛날부터 이 나팔꽃 시장에 왔대.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인간의 의무라나. 너무 촌스러운 얘기지.”
“집이 이 근처야?”
“응, 우에노.”
그렇다면 확실히 이 동네다. 걸어왔을 것이다.
“우리 집은 에토 구야. 기바라고 알아?”
“알아, 미술관 있는 데잖아.”
“맞아. 그런데 가족들은 어쩌고 혼자 있어?”
“어딘가 있을 거야. 나는 좀 피곤해서 쉬던 참이었거든. 너는?”
“비슷해. 발이 이래서.” 소타는 오른발을 가리켰다.
“아, 맞다.” 소녀가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보인 것은 처음이다. 소타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올랐다.
“나는, 가모 소타야.”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지금까지 여자에게 자기소개를 해본 적이 없다.
“가모…… 군?”
“이상한 성이지. 일본 두꺼비(일본어로 가마가에루라고 발음함)처럼.”
소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한자를 알려줬다. 가모의 가蒲 자에 대해서는 “우라야스浦安(지바 현 북서부에 소재한 도시)의 포浦 자 위에 풀초를 붙이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소녀도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바 다카미라고 한다. 다카미에 들어 있는 효孝 자에 대해 “효도할 때 효인데, 부모님은 나보고 불효녀라고, 자주 말씀하셔”라며 웃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녀도 소타와 같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학교 이름도 얘기했다. 소타가 다니는 사립학교 이름을 듣고 다카미가 말했다.
“엘리트네.”
“그렇지 않아. 너야말로 양갓집 규수들이 다니는 학교잖아.”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과는 달라. 게다가 사실은 공학에 다니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고 다카미는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지만 소타는 아직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적어도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입술을 축이고 과감하게 입을 뗐다.
“저기 말이야. 너, 메일 해?”
“물론 하지.”
“그럼 주소 좀 가르쳐줄래?”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저/민경욱 역
비채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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