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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0 의 전체보기
[스크랩] Q4. 운명이란 과연 있는 걸까? | 읽을거리 2014-06-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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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내 운명

 

 

"여기가 그렇게 용하다면서요?"

나는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 점쟁이가 나한테 60살에 죽는다고 했거든. 내가 몸이 좀 아팠어. 근데 난 지금 예순다섯이야. 저 양반이 지어준 보약을 먹고는 아주 건강해졌지. 저이가 점을 잘 보는지는 모르겠다만 보약 하나는 끝내주게 짓는 다우. 오늘도 약 지으러 왔어. 근데 아가씨는 점 보러 왔수?" 

"아가씨는 아니고요.. 네.. 친구 소개로..."

"그럼 재미로 보고 가구려. 근데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건데, 과거를 맞히면 뭐하고 미래를 알면 또 뭐해. 아무 소용없더라니까. 마음만 더 복잡하고 괴로워. 그저 몸뚱이 건강하고,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지금 살면 되는 거유. 암 그게 제일이고 말고."

XX 건강원. 이곳을 이미 거쳐간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저씨는 사주와 관상, 손금까지 3박자를 두루 갖춘 영험한 눈썰미와 재미난 말솜씨의 소유자 란다. 세가지를 동시에 보기 때문에 더욱 신통하고 믿음이 간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건강원이었지만 엄연히 '점집'이었다. 그 동안 재미 삼아 호기심 반, 절실함 반으로 다양한 곳을 두루 섭렵해왔다. 사주 카페, 길거리 포장마차 점집, 타로카드, 별자리 운세, 철학관, 관상쟁이, MBTI, 애니어그램, 그리고 소문난 점집 등 과거와 현대, 동서양을 넘나들며 나의 운명을 알기 위해 발버둥을 쳐온 것이다. 그래, 인정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신과 상담소가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이란 걸. 대화와 카운셀링을 통해 긴 시간을 들여 내 안의 깊은 무의식을 들여다 보고 상처 입은 내면의 자아를 치유하는 대신, 점집으로 쉽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힘들게 나를 들어내어 보여줄 필요도 없다.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만 알려주면 오케이. 그곳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맞춘 것에 신기해 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든가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해서 누군가 말해주길, 그리하여 이런 운명에 처해있는 나를 합리화하고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장에 말이다. 그러니 나의 심정을 토로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 즉 나를 전혀 모르지만 동시에 내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게다가 비용적인 면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제 3의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음... 어디 보자...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구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놀란 기색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 누구나 여행은 좋아하지 않나요?​

​나의 대답에 아저씨는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들어 양 옆으로 까딱 까딱 흔들어 보였다.

"단순히 좋아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Travel이나 Sightseeing이 아니라.. 말하자면 'Journey'야. 아, 내가 요즘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Journey, 무슨 뜻인지 알죠? 그대의 삶은 한마디로 Journey라고 할 수 있지. 삶과 여행이 아주 깊은 연결이 되어 있다. 이 말이야. 한비야 같은 사주랄까. 세상 밖으로 돌아다녀야 빛을 보는 사주야. 저 아프리카의 초원, 아마존 정글, 사하라 사막.. 그런 대자연까지도 품을 수 있지. 여행이 삶에 영감을 줄 거야.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그러니 여행 에세이 같은 걸 써보면 좋을 테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행에세이라면 늘 쓰고 싶기도 하고 이미 한번 써본 적이 있었으니까. 곁눈질로 아저씨의 책장을 바라보니 김영희 PD가 쓴 에세이 <헉 아프리카>가 눈에 띄었다.

-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혹시 제게 로또 운 같은건 없나요?  

​"당신은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로또 같은 건 사지마. 로또 운은 없어."

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막 던지는 재미난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여행'이라는 세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그가 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문득, 그리스 섬을 여행했을 때 어느 중국집에서 먹은 포츈쿠키에서 나온 점괘가 떠올랐다.

'그대는 진정한 여행자입니다. 앞으로 많은 여행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니...'

점괘의 아래에 적힌 번호로 로또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전부 꽝이 되어버렸던 것도...

 

 

​@포춘쿠키에서 나온 점괘

'여행'이 나의 운명인 것일까?​ 여행은 누구나 하는 건데. 아무튼 그렇다니 덮어놓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그러고 보면 가장 용한 점잼이는 잘 맞추는 점쟁이가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점쟁이인 듯 하다. 운명이라. 운명적인 만남, 운명적인 사랑, 운명적인 사건,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좋은 일이 생겨도 이건 운명이야!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이건 운명이야! 라고. 나는 내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자주 운명에 기대었다. 삶이 힘들 때나 뭔가 답답하고 일이 꼬일 때 마다 운명 탓을 했다. 그것은 허공에 기대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지만, 운명이란 종종 신의 계시로 시작되었다. 가령, 꼭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마침 세일이고 내게 꼭 맞는 사이즈가 딱 하나 남았다. 어머나 이건 신의 계시야! 그 물건을 사야 하는 자기 합리화는 종종 이렇게 신의 계시로 시작되곤 했다. 

발리행 비행기 티켓도 그렇게 손에 들어왔다. 내가 낸 휴가 기간에 딱 맞추어 프로모션 세일! 여태껏 발리는 신혼여행이나 가는 섬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부채질을 한 여행에세이가 있었으니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아 영화로도 상영이 된바 있다. 작가는 자신이 진정 누구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자 홀로 1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에서는 쾌락의 기술을, 인도에서는 신앙의 탐구를, 발리에서는 인생의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찾아 행복해진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내 생각이지만, 신앙이니, 균형이니, 자아의 발견이니 다 됐고, 결국 그 여행의 끝에 발리에서 운명적 사랑을 만나서이지 않을까.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운명적 로맨스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발리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책 속에서 작가는 우붓(Ubud)에서 한 주술사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끄뜻 리에르. 발리에서 9대째 주술사를 해오고 있다는 그의 신통한 점괘로 다시 발리를 찾게 된 작가는 우붓에 체류하며 그의 입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바로 이거야! 나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알려줄지도 몰라! 나도 이 주술사를 좀 만나봐야겠어! 그런데 이 책은 몇 년 전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해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내가 생각해도 허무맹랑한 발상이었지만 만날 운명이라면 만나지겠지 싶었다. 사실은 운에 기댈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겐 구글이 있으니까. 클릭 몇 번으로 주술사가 아직 우붓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심지어 그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손에 넣었다. 그곳을 다녀 온 어떤 미국 여자가 친절하게도 명함까지 캡쳐해서 올려놓은걸 발견한 것이다. 나처럼 주술사를 만나보리라 결심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나 보다. 이미 그곳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성지요, 발리의 핫플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발리까지 그것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의 주술사에게 점을 보러 가겠다는 내 자신이 좀 우습긴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나의 운명은 여행, Journey라는데...            

 

 

 

주술사를 찾아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도시로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우붓으로 달렸다. 우붓은 발리의 중심지로 내륙의 산 속에 위치해 있는 도시다. (도시라고 하기엔 동네에 가깝긴 하지만) 그러니까 나는 발리 '섬'에 다녀왔지만 바다는 코빼기도 보지 못하고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바다는 없지만 우붓엔 아름다운 계단식 논과 많은 힌두 사원이 있으며 걷기 좋은 사랑스러운 산책 코스 그리고 숲과 계곡이 있다. 이 지역은 발리 문화의 중심지로 께짝 댄스와 같은 전통 춤 공연이 매주 사원에서 열리는가 하면 전통 복장을 한 발리인들이 사원에서 열리는 종교 의식에 참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예술적 에너지가 넘치는 곳으로 그림과 목공예가 유명해 크고 작은 갤러리와 아티스틱한 가게들도 많은 곳이다. 그 밖에 분위기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저녁마다 생음악을 연주하는 바, 요가나 명상을 할 수 있는 곳, 쿠킹 클래스, 꽃과 야자나무, 논..... 주술사가 아니었다 해도 한달 즘 머물러보고 싶은 매력적인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우붓의 메인 지역인 멍키포레스트 로드에 있는 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근처에 실제로 원숭이 숲이 있었다. 구글에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주술사의 집은 원숭이 숲을 지나 남쪽으로 2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지역에 있었다. 이곳까지 찾아 왔는데 정말 만날 수 있겠지? 나이가 많다고 들었는데 (그 자신도 정확히 자기의 나이를 모른다고 한다) 설마 그 동안 세상을 뜨셨거나 어디로 이사를 한 건 아니겠지? 혼자 숙소 근처 바에 앉아 라임 모히토 한잔을 들이키며 행운을 빌어 보았다.

 

 

 

@아름다운 우붓의 논과 길

끄뜻 리에르 - 의술. 힐링과 명상. 손금. 발리식 점성술. 화가. 홈스테이.

그의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 다행스럽게도 간판이 걸려 있었다. 찾았다! 역시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가. 사원처럼 생긴 그의 집은 전통적인 발리 집이었다. 문이 활짝 열려있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책의 영향으로 전세계에서 점을 보러 이곳 발리까지! 오 놀라워라. 쭈뼛하게 서 있는데 누군가 내게 빨간 딱지를 내밀었다. 거기엔 1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당신은 14번째에요. 하고 말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다. 이것은 번호표. 비행기를 타고 멀리 이 낯선 곳까지 와서 점을 보겠다고 번호표를 받아 쥐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나처럼 번호표를 받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국적은 실로 다양했다. 미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등등. 주술사는 오픈 된 공간에서 사람들의 점을 봐주고 있었다. 저 분이구나. 그는 내 상상 속 모습과 비슷했다. 나이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늙었고, 앞니는 빠져 있었고 눈빛은 그의 이름처럼 빛나고 있었다. 끄뜻 리에르가 밝은 빛이라는 뜻이란다. 하지만 그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책과 영화 때문에 유명해져서 갑자기 불어난 전 세계에서 들이닥친 고객들을 상대하려면 그럴 수 밖에. 나는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다 들리는 앞쪽에 앉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는 점을 보러 온 사람의 얼굴을 먼저 보고 이마를 유심히 살펴 보고, 목 뒤를 보고 그리고 손금도 차례로 들여다 보았다. 대화는 간단한 영어로 이어졌다.  

 

 

"어디서 왔어? 결혼은 했어?"

- 이탈리아에서 왔고 아직 싱글이에요. 제게 남자 친구가 생길까요? 전 소울메이트를 찾고 있어요.

"왜 애인이 없어?"

- 저도 몰라요...​ 그래서 여기 온 거에요.

"당신은 예쁘니까 곧 생길 거야. 걱정하지마"

- 정말요? 언제 생길까요? 그리고 제 건강은 어때요?

"곧 생긴다니까. 그리고 건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100살까지 살 거야"

 

그녀는 활짝 웃으며 퇴장했다.​ 다음!

"어디서 왔어? 결혼은 했어?"

- 호주에서 왔고 싱글이에요. 결혼은 언제 즘 하게 될까요?"

" 곧 하게 될 테니 걱정하지마."

- 내년엔 하게 될까요?

"예스 예스 곧 하게 돼. 그리고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 거야"

다음!

"어디서 왔어? 결혼은 했어?"

- 싱글이에요.. 애인은...

"돈워리. 곧 생겨!"

 

 

 

이건 대체 뭔가.... 책 속에 있던 지혜롭고 영험한 주술사는 어디로 가고 그곳엔 마치 외워서 말하는 듯한 똑같은 대답의 점괘만 되풀이하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질문도 어쩜 저리 똑같은지. 하기야 싱글들의 가장 큰 고민이 뭐겠나. 바로 운명의 짝이 언제 나타날까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100살까지 산다는 것은 아마도 발리식으로 말하자면 오래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2시간여를 그렇게 점보는 것을 엿들으며 기다린 후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인사를 하고 앉자마자 먼저 말을 꺼냈다. 

- 저는 한국에서 왔고, 결혼은 했어요. 건강은 괜찮고..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이에요.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러니까 미래가 궁금해요.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그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었나 보다. 그는 내 얼굴과 이마 그리고 손금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목 뒤와 어깨, 팔 안쪽과 팔꿈치도 보고 무릎부터 발목까지 다리의 모양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은 책을 좋아해. 아마도... 컴퓨터 관련된 일, 그리고 책을 쓰거나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거야. 그 일이 당신에게 좋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이 생기지. 그 힘이 당신의 미래를 럭키하게 만들어 줄 거야. 믿어도 돼." 

- 제가 정말 그런 일을 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책을 쓸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몰라. 나는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할 뿐이야.​ 하고 안하고는 당신에게 달려있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해. 그게 자신에게 맞는 길이니까. 그리고........ 100살까지 살 거야" 

그가 내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나도 활짝 웃었다. 책 속의 끄뜻 리에르가 내 앞에 있었다.

 

 

 

@발리의 주술사 '끄뜻 리에르' ​

그건 나도 몰라. 운명은 너한테 달려있는 거야

발리의 물가를 생각했을 때 비싼 복채를 내고 그의 집을 나왔다. 나는 다시 원숭이 숲을 지나 천천히 걸어 어느 분위기 있는 카페에 도착해 갈증 난 목을 축였다. 그곳의 책장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의 원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점괘를 떠나서 어쨌든 그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사실은 만날 운명이었다기 보다 그 운명을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동분서주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휴가를 내고 비행기 티켓을 사고 인터넷의 바다에서 그를 찾아 헤매었다. <세렌디피티>라는 영화가 있다. 운명적 사랑을 믿는 여자 사라와 운명을 만들어가는 남자 조나단.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찾은 둘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장갑을 우연히 동시에 집게 되고 서로에게 첫눈에 호감을 가진다. '우연한 행운'이라는 의미를 가진 '세렌디피티' 카페에서 여자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정을 하는건 우리지만 운명이 보내는 계시를 잘 읽어야 행복을 찾는다고 믿는 그녀.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그에게 만날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며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5달러 짜리 지폐에 남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게 한 뒤 가게에서 사탕을 사고는 그 돈이 자신에게 돌아오면 그때 전화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락처는 좋아하는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적어 헌책방에 팔 테니 그 책을 찾게 되면 연락하라면서. 상대방의 연락처가 운명처럼 손에 들어오는 날 우리는 만나게 될 거라고. 둘은 그렇게 헤어지고 7년의 세월이 흐르지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상대방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결혼식을 앞둔 상황에서 서로를 찾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백화점에서 장갑을 샀던 영수증 보관소를 뒤지는가 하면 비행기를 타고 상대방이 살고 있는 도시로 날아가기도 하고, 기억을 더듬어 찾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아 다닌다. 그러다 지쳐 포기하려고 할 때 즈음 운명처럼 서로의 연락처가 적힌 지폐와 책을 각각 손에 넣게 되고 둘은 처음 만난 날 같이 갔었던 장소에서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내가 그 동안 로맨틱 코메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영화에서나 가능할법한 우연이고 운명이잖아! 하면서도 마지막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었다. 그녀처럼 나도 운명이라는 걸 믿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운명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깨달아서였을까. 아니면 영화가 너무 로맨틱해서 였을까. 

 

 

@길을 걷다 우연히 Serendipity라는 이름의 가게를 보았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그래서 삶이란 다 계획되어 있고, 우린 운명대로 살아가는 거라면, 도대체 삶의 의미란 뭘까? 이미 다 정해져 있다면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나는 운명이 궁금해 이 멀리까지 날아왔다. 그 사실이 좀 우습기도 했지만 끄뜻이 해준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그건 나도 몰라. 나는 그저 보이는 대로 알려줄 뿐 무언가를 하고 안하고는 결국 너한테 달려있는 거야... 그 동안 '이것이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수많은 우연의 기회들을 그냥 흘려 보낸 것은 아닐까. 그와 내가 어떻게든 만날 운명이라면 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려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찾아갔다. 운명이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앉아 있으면 제 발로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 다가 온 우연을 운명으로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우연은 '끌림'이라는 느낌으로 종종 다가온다. '세렌디피티'는 노력한 끝에 찾아오는 우연한 행운을 뜻하는 말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걸 뜻하기도 한단다. 세상에는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보물과 같은 운명이 있고, 그 보물을 발견하기 위한 끌림에 응답할 때 비로소 우연한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운명을 사는 가는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일 테지. 노트를 펼치고 좋아하는 단어에 '세렌디피티'를 추가해본다. 건강원 아저씨가 해준 말도 떠올려 보았다. 그대의 삶은 Journey야... 따지고 보면 우리의 모든 삶이 Journey, 끌림에 의해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정이리라.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우붓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으니. 

 

 

 

@제단에 차낭을 바치는 발리 소녀​

발리의 우붓은 신들의 섬.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말로 신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동네였다. 그곳의 아침은 꽃과 기도로 시작됐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꽃이 있었다. 조그만 꽃바구니들이 길거리에도, 가게 앞에도, 사원의 돌계단 위에도, 교통이 많은 도로엔 더욱 듬뿍 놓여 있는걸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니 아침 일찍 길을 나설 때는 자칫 이것을 밟지 않도록 주의를 하며 길을 걸어야 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네모난 바구니 안에는 색색 가지 꽃들과 과자 그리고 향초가 피어 오른다. 이것은 '차낭'이라고 부르는데 매일 아침 신께 제물을 바치며 하루의 안녕을 빈다고 했다. 발리인들은 이 의식을 하루에 여러 차례 치른다. 이들은 분명 운명은 믿지만 그것이 정해져 있다는 건 믿지 않는 게 틀림없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매일 신에게 안녕을 기도하는 삶은 살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거리에서 꽃을 파는 아주머니가 내 머리에 꽃 한 송이를 꽂아 주었다. 나는 미친년처럼 온종일 그 꽃을 머리에 꽂고 다녔다. 여기는 우붓이니까. 나처럼 머리에 꽃을 꽂은 발리의 여인들이 지나가면서 눈으로 웃어 주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머리에서 은은한 향이 나던 그 하루가 참 좋았다. 꽃바구니를 들고 사원을 향하는 그들을 따라 나도 기도를 올려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오늘도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하루가 되게 하소서. 미래의 불투명함을 운명에 맡기기보다 우연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하소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걸음씩. 그리하여 운이 올 때 그 자리에 있게 하소서. 그리고... 그리고... 로또도 한번 즘은 되길..... 쩝. 

 

 

 

 

 

 

 

* 연재가 1주일 늦었습니다 ^^;;; 다음 연재는 6/11일(수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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